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안토니 비버 지음, 안종설 옮김/서해문집
<2차 세계대전의 분수령 스탈린그라드 전투 >
1941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러시아를 주목했다. 소련의 막대한 유전과 영토에 대한 욕망, 그리고 슬라브 인종의 씨를 말려 버리겠다는 일념으로 히틀러는 소련 침공을 계획한다. ‘바르바로사 작전’이라 이름 붙은 이 침공 계획 아래 독일의 3백만 대군이 소련과의 접경지역에 배치되어 발포 명령을 기다렸다.
6월 22일, 최초의 포성과 함께 역사상 최대의 시가전으로 기록될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서막이 올랐다. 세계 어느 나라의 정보기관도 이 전투가 그토록 질기게 이어지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또한 그토록 많은 인명이 죽으리라는 것도. 막강한 화력과 효율적인 부대편제, 탁월한 지휘관들을 보유한 독일군은 파죽지세로 소련 땅을 가로질러 전진했다. 개전 이틀 만에 소련군 전투기 2천 대가 파괴되었고, 전투는 딱 한 달이면 끝날 것 같았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독일군의 승전가는 이내 지옥에서 울부짖는 비명으로 변하였다.
2차 세계대전의 판세는 독일과 소련의 전쟁에서 판가름 났다. 소련과의 전쟁에서 사망한 독일군은 2차대전 당시 독일군 전체 전사자 중 약 80%에 이른다. 소련의 피해 역시 산술적으로 가늠이 되지 않는 규모이다. 소련의 국토가 온통 초토화된 이 전투의 결과, 승승장구하던 독일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2차 세계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기울었다.
<바보 이반, 세계를 지켜내다>
독일군의 패배에 대해 러시아의 겨울 날씨 때문에 패했다거나, 러시아의 인해전술에 말려 자원을 소모하다가 후퇴했다는 등의 속설이 퍼져 있다.
스탈린 체제의 비효율적인 공포정치에 익숙해진 소련이 어떻게 그토록 막강한 독일군을 이길 수 있었는가. 전쟁 초반에 다시 일어서기 힘들 정도로 타격을 입은 소련군은 주코프와 추이코프라는 두 걸출한 장군을 적소에 배치하고, 독일군과 싸워 가며 전술을 익혔다. 소련 국민들은 끊임없는 노동으로 공장을 돌려 무기를 만들었다. 가히 전 국민이 동원된 전시 체제 아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묵묵히 밤낮으로 일했으며, 그 희생은 독일의 군수 생산력을 능가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최전선에서 독일군과 마주하고 있던 소련군은 자신들에게 물러설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마지막 남은 한 명까지 싸웠다. 폭탄 파편에 맞아 한쪽 팔이 떨어져나가면 나머지 한 팔로 수류탄을 던지고 방아쇠를 당겼다. 결국 독일군 측도 ‘개들이 사자처럼 싸운다’며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흐루시초프의 언급처럼 소련은 스탈린 덕분에 독일에 이긴 것이 아니다. 스탈린이 있었음에도 이긴 것이었다.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스탈린이나 히틀러가 아니라, 이름조차 없이 사라진 무명용사들이다. 그 ‘이반’(러시아에서 가장 흔한 남성 이름으로 독일군이 소련인을 비하해서 부른 말)들이 러시아를 지켜냈고 나아가 세계를 구했다. 이 책은 스탈린과 비밀경찰에게 시달리고, 독일군에게 멸시 당했던 그 바보 이반들에게 바치는 만가輓歌이다.
<히틀러와 스탈린, 두 독재자를 비교한다>
히틀러와 스탈린이라는 두 독재자의 충돌이기도 했던 스탈린그라드 전투. 총사령관 자리에 오른 두 인물의 행보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모든 의사결정을 독점한 히틀러는 집착과 독선에 사로잡혀 수많은 독일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스탈린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그는 전세가 불리해지자 유능한 군사 지휘관들에게 많은 자율권을 허용했다.
‘스탈린의 도시’를 반드시 점령하고 말겠다는 광기와 편집증에 사로잡힌 히틀러는 오판을 거듭했다. 그 결과 독일은 패배했다. 이 책은, 전쟁 초반 탁월한 전략가로서 능수능란하게 전쟁을 지휘하던 히틀러가 어째서 편집증에 사로잡혀 모든 일을 그르치게 되었는지를, 측근들의 증언을 통해 세밀히 보여 주고 있다.
<정통 역사서이자 휴먼 드라마>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는 자칫 지루하고 건조한 전쟁 기록에 그칠 수 있는 이야기에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의 요소를 더해 한층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탁월한 역사서이면서 한 편의 전쟁 다큐멘터리이다. 지은이는 전투 현장의 양쪽 군인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댄 것처럼, 전장과 사령부 지휘소로 번갈아 가며 독자들을 안내한다.
책 갈피갈피마다 양측 군인들의 일기와 편지가 풍부하게 제시되어 전장에서 피 흘리며 죽어 간 사람들의 가쁜 숨결과 화약 냄새가 묻어난다.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들의 다양한 이야기와, 그들의 기쁨과 공포가 담긴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를 통해 우리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바로 역사를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한국의 독자들이 읽을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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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서적이고 현재 중간까지 읽었는데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으로 생생한 당시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책이네요.... - 스태븐의 독서산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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