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카불 공항은 아비규환이었다. 미군이 20년간 훈련시키고 수백조 원어치 무기를 쥐여준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탈레반이 수도에 진입하자 총 한 발 제대로 쏘지 못하고 무너졌다. 군복을 벗어던지고 도망친 병사들의 뒷모습은 전 세계 군사 전문가들에게 씻을 수 없는 충격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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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면 좋은 관련 영화들 : 2021년 아프가니스탄 카불 철수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 더 커버넌트 (The Covenant) 2023년 미국 : 아프가니스탄 전쟁 배경 미군 병사와 아프가니스탄 통역의 우정
# 워호스 원 (Warhorse One) 2023년 미국 :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으로 부터 선교사 가족을 구출하는 네이비씰 대원의 사투
# Retrograde 2022년 미국 : 철수 과정을 내부에서 촬영한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실망한 미군 병사들, 좌절한 아프간 군인들, 카불 철수 현장을 실시간으로 담았다. 감독 : 매듀 하이네만(Matthew Heineman)
# Escape from Kabul 2022년 미국 : 미군 철수 18일 동안 카불 공항에서 촬영. 12만 4천 명 대피 작전의 실제 현장을 담은 HBO 다큐멘터리. 감독 : 제이미 로버츠(Jamie Robe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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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무기가 아니었다. 싸울 이유를 잃은 군대는 어떤 첨단 장비로도 버틸 수 없다. 20년치 실패가 그것을 증명했다.
미국 랜드 연구소(RAND Corporation)를 비롯한 주요 안보 싱크탱크들은 이 붕괴를 분석하면서 하나의 개념을 전면에 내세웠다. 바로 '싸울 의지(Will to Fight)' 다.
전투력은 병사의 숫자나 장비 스펙이 아니라, 그 병사가 '왜 싸우는지'를 아느냐에 달려 있다는 결론이었다. 이후 동맹국을 평가하는 기준은 조용히, 그러나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새로운 평가 항목은 네 가지로 압축된다. 무기를 스스로 만들 수 있는가, 전시에도 생산 라인을 유지할 인프라가 있는가, 실전 경험이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 정말로 싸울 의지가 있는가.
그 기준을 가장 높은 점수로 통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었다.

2015년 여론조사 기관 갤럽이 발표한 '자국 방어 의지' 조사에서 한국인 응답자의 약 42%가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고 답했다. 단순한 수치로 보면 평범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맥락이 다르다. 응답자의 절대다수가 실제 전투 훈련을 받은 예비역이라는 점이다. 추상적인 애국심이 아니라, 총기를 분해하고 조립해 본 손을 가진 사람들이 내놓은 답이다.
서울 25개 자치구 어디를 가도 골목 슈퍼 사장도, 아파트 경비원도, 택배 기사도 총기 분해·조립 경험이 있는 나라. 이것은 통계가 아니라 일상의 풍경이다.
그 배경은 한반도의 지리에서 시작된다. 국토의 70%가 산이다. 수천 년의 역사 동안 한반도의 산세는 전략 지도이자 생존 지도였다. 특히 휴전선은 지금도 서울역에서 수원역까지의 거리 안에 있다. 세계 어느 수도도 이토록 전선에 가깝지 않다.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 몰려 사는 구조에서 전쟁은 '먼 나라의 뉴스'가 아니다. 아파트 창문 너머로 상상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1950년 한국전쟁 직후 제도화된 징병제는 이 압박을 구조화했다. 대한민국 성인 남성은 대부분 군복을 입었고, 제대 이후에도 예비군과 민방위 훈련이 수십 년간 이어진다. 6.25의 기억은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가 노년이 된 지금도 살아 있다. 피란민이었던 할머니의 이야기가 식탁 위에서, 명절 할아버지의 목소리로, 교과서 속 흑백 사진으로 다음 세대에 전달됐다. 6.25 때 교복을 벗고 소총을 들었던 학도병의 유전자가, 지금의 4050 세대에게 그렇게 스며들었다.
미국 안보 전문가들이 경악한 것은 바로 이 구조였다. 전쟁이 나면 망설임 없이 입대하겠다고 답한 평범한 가장들. 그 투박한 본능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억지력의 원천이었다.

1990년대 중반, 한국 방산업체의 수출 실적은 사실상 전무에 가까웠다. 내수용 무기를 겨우 자급하는 수준이었고, 국제 방산 시장에서 '한국'이라는 이름은 낯선 브랜드였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2023년, 한국의 방산 수출액은 약 14조 원을 넘어섰다. 2024년 기준 한국은 세계 방산 수출국 순위 4위권으로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세계 시장의 변방이었던 나라에, 지금은 폴란드·루마니아·호주·이집트가 줄을 서서 계약서를 내민다.
이 도약을 설명하는 데 흔히 등장하는 단어는 가격 경쟁력과 빠른 납기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절반의 설명이다. 나머지 절반은 사람에 있다.
방산 자립의 뿌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항 제철의 쇳물이 탱크 장갑판이 될 수 있도록 산업 생태계 자체를 국가 단위에서 설계했다. 단순히 공장을 세운 게 아니라, 전시에도 생산 라인이 멈추지 않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이 선택은 당장의 경제 효율보다 생존을 먼저 계산한 결과였다.
1980년대 K1 전차 개발 당시, 미국의 기술 이전 제한 속에서 국내 기술자들은 역설계로 부품을 뜯어 분석하며 독자 설계 역량을 키웠다. 야간 작업이 일상이었고, 설계도 한 장 없이 시작한 시절도 있었다. 실패한 시제품이 쌓일수록 기술은 내부에 축적됐다. 그 축적이 훗날 K2 전차와 K9 자주포의 토대가 됐다.
아프가니스탄과 한국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미국이 떠난 자리에서 무기를 작동시킬 기술도, 부품을 조달할 인프라도 남지 않았던 나라와, 외부 지원이 끊겨도 자체 생산 라인을 돌릴 수 있는 나라는 처음부터 출발점의 선택이 달랐다. 하나는 무기를 구입했고, 하나는 무기를 만드는 능력을 키웠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폴란드는 K2 전차 180대와 K9 자주포 212문을 계약했다. 납기가 빠르고 실전 검증이 됐다는 이유였다. 유럽 방산업체들이 주문 폭주로 수년치 백로그에 허덕이는 사이, 한국은 생산 라인을 빠르게 확장했다. 수십 년간 내수를 위해 쌓아온 양산 인프라가 국제 위기의 순간 결정적인 경쟁력이 됐다.(https://www.defensenews.com/global/europe/2025/08/01/poland-doubles-down-on-south-korean-tanks-with-65-billion-deal/)
그런데 이 생산 인프라를 받치는 것이 단순한 제조 기술만은 아니다.
창원 산업단지의 한 방산업체 생산직 노동자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만드는 포탄이 언젠가 자기 아들이 쏠 수도 있다"고. 농담처럼 들리지만 농담이 아니다. 징병제 국가에서 생산자와 사용자는 실제로 같은 사람이거나, 같은 가족이다.
이 구조가 품질에 대한 감각을 전혀 다른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납품 단가를 맞추기 위해 부품을 타협하는 순간, 그것은 어딘가의 낯선 병사가 아니라 내 아들의 손에 쥐어질 수 있다는 감각. 그 감각이 K방산의 품질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기둥이다.

비교 사례가 있다. 냉전 시기 스웨덴은 중립국임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방산 기술을 보유했다. 비결은 방산을 순수한 산업이 아니라 국가 생존 인프라로 다룬 제도 설계였다. 한국과 스웨덴은 지리적·정치적 조건이 전혀 다르지만, 외부 위협을 내부 기술 자립의 동력으로 전환한 구조적 선택은 닮아 있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에는 그 선택을 밀어붙인 집단적 심리, 즉 징병제로 단련된 4050 세대의 '싸울 의지'가 산업 현장까지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K방산의 성공은 군사 기술의 승리가 아니다. 한반도의 지형과 역사가 빚어낸 인간의 심리가, 국가 설계와 산업 역량으로 전환된 결과다. 가족을 지키겠다는 투박한 본능이 탱크를 만들고, 포탄을 만들고, 세계 4위 방산 수출국의 계약서를 채웠다() 2026-06-01
스티븐의 전쟁영화보고評 하승범 대표
thewithatt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