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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유럽

엘 알라메인 (El Alamein) 2002년 이탈리아

by 하승범 2007.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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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알라메인 (El Alamein : The Line Of Fire) 2002년 이탈리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전선 엘 알라메인 전투에 참전한 대학생 지원병 세라이병(Serra)의 눈을 통해 무책임하고 부패한 지휘부에 의해 사막전투에 내몰린 '이탈리아'병사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전쟁영화.

1940년 6월 이탈리아 수상 베니토 무솔리니는 '독일의 영국본토 항공전 (Battle of Britain)'으로 영국의 지배력이 약화된 것으로 판단되는 '이집트'에 대한 침공을 계획한다.  25만명의 이탈리아군은 1940년 9월 13일 이탈리아식민지 리비아에서 3만명의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이집트침공을 시작한다.

초기 기선을 잡았던 이탈리아군은 1940년 반격을 시작한 영국군에 밀려 순식간에 수만명의 사상자와 포로를 내고 리비아로 쫓겨난다. 영국군의 진격으로 1941년 2월초 북아프리카 이탈리아군은 괴멸상태에 빠진다.  

결국 북아프리카전역의 동맹국 이탈리아를 지원하기 위해 독일은 2개 기갑사단으로 구성된 '독일 아프리카군단(Deutsche Afrika Korps)'를 리비아에 파병한다

감독 : 엔조 몬텔레온 Enzo Monteleone
출연 : 파올로 브리구그리아 Paolo Briguglia  피에르프란체스코 파비노 Pierfrancesco Favino  루시아노 스카르파 Luciano Scarpa  에밀리오 솔프리지 Emilio Solfrizzi  토마스 트라바치 Thomas Trabacchi  지우세프 세데르나 Giuseppe Cederna  피에로 마기오 Piero Magg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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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첫장면, '세라(Serra)'이병이 '엘 디바'에서 파비아사단 전초중대로 전입을 하기 위해 '오토바이병'과 함께 이동한다.  이 '오토바이병'은 이탈리아군 베르사엘리(Bersaglieri)부대원이다.  이 부대의 상징인 철모의 깃털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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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10월 이집트 북부 엘 알라메인(El Alamein)에 위치한 이탈리아군 파비아사단 28연대(28th Infantry Rgt, 17th Pavia Infantry Division) 전초중대로 대학생 지원병 '세라(Serra)'이병이 전입을 온다.  그는 전방초소이 리초하사(Sgt. Rizzo)의 분대에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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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Serra)는 조국을 위한 전쟁에서 수훈을 세워 가족에게 돌아가길 희망하지만 영국군 포화의 공포와 더불어 미흡한 보급으로 인해 '갈증과 이질'과 먼저 싸워야 하는 이탈리아군을 알게 된다.  그들은 승리에 대한 뚜렷한 비전도 없이 그저 기적적으로 살아서 지옥같은 사막의 참호에서 벗어나기를 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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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끼 제공되는 식사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고 디젤기름이 섞인 물이 공급되고 의약품이 부족해서 '이질'로 고생하는 전선의 병사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탈리아 지휘부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입성할 때 퍼레이드에 사용한 말과 구두약을 보급하고 있다.  피오레중위(Lt. Fiore)는 무솔리니의 말에 총을 겨눈다.  병사들에게 말고기를 먹이기 위해... 그러나 결국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그것이 무솔리니의 말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영국군의 포격으로 피오레중위(Lt. Fiore)의 중대원들은 매일 매일 전사자가 늘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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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초하사(Sgt. Rizzo)와 세라(Serra)일행은 전선 후방으로 물을 구하기 위해 떠난다.  디젤유가 섞인 물을 보급받은 그들은 리초하사(Sgt. Rizzo)의 일탈을 제안받고 인근 바닷가로 달려간다.  이들은 잠시 바다에 몸을 던지며 자유로움을 만낀한다.  "그냥 이대로 숨어서 전쟁이 끝나길 기다릴까?" 하는 독백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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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레중위(Lt. Fiore)는 지뢰지역의 보수공사를 나온 장교로 부터 영국군이 대규모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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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레중위(Lt. Fiore)는 리초하사(Sgt. Rizzo)에게 전방 지뢰지대 뒷편에 위치한 '저지대'(해수면보다 낮은 지역)에 대한 정찰을 명령한다.  특히 그곳에 투입되어 소식이 끊어진 저격대원들을 찾을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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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대 사막을 횡단하여 정찰은 나간 리초하사(Sgt. Rizzo)와 세라(Serra)는 유목민들에 의해 목숨을 잃은 저격대원들을 발견한다. 이들이 묻어준 병사들은 이탈리아군  베르사엘리(Bersaglieri)부대들임을 철모의 깃털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들이 부대로 돌아오는 중에 부대는 영국군의 대규모 폭격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상태였다.  1942년 10월 23일 엘 알라메인전투가 시작된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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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초하사(Sgt. Rizzo)와 세라(Serra)는 정찰에서 돌아와 포격으로 전사한 동료들을 묻고 부대를 이동하여 폴고레사단(25th Bologna Infantry Division)지역의 방어를 담당하게 된다.  밤새 영국군의 대규모 공세에 맞서 싸운 이탈리아군은 공세를 막아냈지만 전세는 급격하게 기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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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저 바위처럼 현재의 위치에서 전투를 벌일 준비를 하고 영국군을 기다린다.  그러나 이탈리아군 사령부가 후퇴를 하면서 퇴각명령이 떨어진다.  피오레중위(Lt. Fiore)의 중대원들은 재집결지를 향해 차량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사막을 도보횡단하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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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이탈리아군 지휘부의 무능함을 보게 된다.  한 장군은 깊은 패배감에 빠져 죽은 당번병의 시체를 묻고 자살을 하며, 차량으로 후퇴하는 대령은 '곧 지원군이 올 것이다'라며 전선으로 속히 복귀할 수 있도록 하라는 말을 남기고 부상병들을 내버린채 차량을 타고 떠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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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집결지로 향하던 피오레중위(Lt. Fiore)은 100Km의 사막을 횡단하여 '푸카'까지 후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지치고 부상당한 부하들과 후퇴하던 일행은 숙영지에서 영국군의 기습을 받아 모두 포로로 생포된다.  숙영지 인근에 있던 피오레중위, 라초하사, 세라는 별도로 사막을 횡단하여 탈출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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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횡단하던 피오레중위, 라초하사, 세라 일행은 버려진 트럭과 오토바이를 발견한다.  그러나 이미 부상이 심해진 피오레중위가 이동할 수 없게 되자 라초하사도 그곳에 남게 된다.  우연히 수리된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는 세라는 받드시 돌아오겠다고 맹세하지만 결국 그는 돌아가지 못한다.

흔히 이탈리아군의 군기가 문란하였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영화에서 사실적으로 묘사가 된 것 처럼 그런 군기강의 해이는 지휘부의 부패와 무능력에서 기인하고 있다.  큰 전투의 모습은 없지만 잔잔하게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의 아픔을 그린 영화이다 - 스티븐의 영화보기

영화의 파비아사단 (17th Pavia Infantry Division)가 주둔한 위치는 '엘 알라메인' 남쪽에 위치한다.  영국군 8군단 (몽고메리장군)은 북쪽을 주공격루트로 산정하고 제30군단이 공격하도록 하고, 주공방향을 감추기 위해 남쪽에 제13군단이 공격하도록 하였다.

이 전투에는 독일-이탈리아연합군 104,000명과 영국 8군단 195,000명이 참전하여  독일-이탈리아연합군 9,000명이 전사하고 15,000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35,000명이 포로가 되었고 영국군은 4,600명이 전사하고 8,500명이 부상하였다.

1942년 11월 5일 엘 알라메인에서 100Km까지 후퇴하여 푸카에 도착한 독일군은 겨우 12대의 전차와 4,000여명의 병력만이 남아 사실상 독일아프리카군단이 소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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