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은 미얀마를 식민 통치(British rule in Burma, 1824년 ~ 1948년)하며 미얀마를 쌀 생산기지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 농지 개간과 도시 인프라 확대를 위해 많은 인도계 주민들을 미얀마에 정착시켰다.
이들 인도인들은 주로 아삼과 마나푸르 지방의 브라흐민과 크샤트리야 등 상위 카스트 출신으로 대영제국에서 버마인들을 견제할 목적으로 미얀마 내 소수민족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정책이었다.
이때 이주한 인도인 중에서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 로힝야(Rohingya)족이 있다. 인도 동부에서 이주한 로힝야(Rohingya)족은 불교국가인 미얀마에서 영국이 미얀마 원주민들로부터 강제로 뺏었은 토지를 받아 농사를 짓게 되었다. 현재 로힝야(Rohingya)족은 미얀마에서 130만 명이 살고 있으며 주류인 미얀마 원주민인 버마족은 물론 한족, 카렌족, 아리칸족, 샨족, 몬족 등의 소수민족과도 갈등을 빚고 있다.
미얀마로 이주한 인도인들은 미얀마 원주민들을 인도 신분제인 '와르나(Varna) 카스트 제도'의 최하위계급인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으로 취급하며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다.
이들은 미얀마 원주민과 통혼도 하지 않으면서 한편으로 버마 여자들을 첩으로 삼아 생활하였다. 이런 그들에게 미얀마 원주민들은 불만과 적의을 갖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얀마를 접령한 일본제국은 로힝야(Rohingya)족의 농지를 빼앗아 다시 미얀마 원주민들에게 돌려주었다.
한편 대영제국은 이렇게 일본제국에 피해(?)을 받은 로힝야(Rohingya)족을 무장시켜 대일전에 합류시킨다. 하지만 무장한 로힝야(Rohingya)족은 일본군과의 전투를 벌인 것이 아니라 비무장 미얀마 원주민을 학살하고 다시 농지를 빼았았다.
1942년 로힝야(Rohingya)족은 아라칸주에서만 2만여명의 미얀마 원주민을 학살하고, 불교국가인 미얀마의 절을 파괴하고 승려를 학살하기까지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영제국이 철수하자 1948년 미얀마는 독립을 하게되고 미얀마 원주민인 '버마족'이 집권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 버마족들은 그동안 쌓여왔던 민족감정이 터져 로힝야(Rohingya)족에 복수를 시작하고 로힝야(Rohingya)족은 이슬람 과격단체의 지원을 받으며 미얀마 정부에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Rohingya)족을 인도나 방글라데시로 추방시키거나 자국 내에서 완전히 쫓아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차별과 탄압을 계속하고 있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미얀마가 독립하자 그때까지 독립운동을 해오던 아웅 산의 인민자유동맹(AFPFL)이 총선에서 이겨 정권을 잡았지만 공산당 및 소수민족 간의 정치 갈등과 경제 혼란 등이 겹처 1962년 네 윈의 쿠데타 이후 1988년까지 버마 사회주의계획당(BSPP)이 '버마식 사회주의'를 제창하며 1당 독재를 했다.
그러다가 1988년에 터진 "8888 항쟁(1988년 8월 8일 ~ 9월 16일, 네 윈 정부에 반대하여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소 마웅이 이끄는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가 군부 내에서 쿠데타를 터뜨려 네 윈을 권좌에서 몰아냈고, 이후 2011년까지 군사독재를 했다.
한편 중국은 미얀마에 욕심을 갖고 있다. 미얀마는 중국이 인도양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략 통로이기 때문이다. 이에 미얀마 군부는 인도의 국방력과 일본의 경제지원을 기반으로 중국을 견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일본은 미얀마의 경제적 지원을 무시하게 되고 결국 미얀마 군부는 미국과 더 가까워지려는 외교 행보를 보였다.
미얀마 군부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민주세력 지도자인 아웅 산 수치(Aung San Suu Kyi, 1945년 6월 19일 ~ )를 풀어주고, 2015년 자유선거를 실시해서 형식적으로는 미국이 원하는 민주주의를 실시하되 군부는 실권을 잡는 것으로 권력구조를 재편하는 군부독재 정치체제를 바꾸었다.
미얀마 군부는 2008년 개정된 헌법에 따라 선거와 관계없이 상하원 전체 의원의 25%를 지명할 수 있고, 국방장관과 내무장관, 국경장관은 현직 군인이 임명되며, 미얀마 군(軍)의 최고통수권자도 대통령이 아닌 미얀마 군(軍) 최고사령관이 갖는 권력구조로 미얀마 군부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게 유지된다. 미얀마 군부가 25%을 기본 표로 갖고 있어 헌법 개헌을 위한 75% 이상 표 확보도 불가능한 구조이다.
하지만 2020년 11월 총선에서 아웅 산 수치가 이끄는 국민민주연맹(NLD)이 압승하며 선거 선출할 수 있는 의석 75%의 83%을 가져와 전체 국회의원 의석의 62%를 확보하였다. 이를 계기로 아웅 산 수치는 2021년 1월 5일 미얀마 군부에게 의석 25%를 기본 배정하는 헌법의 개정을 요구하게 된다.
미얀마 군부는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의 지원을 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아웅 산 수지는 물론 미얀마 군부까지 같은 마음으로 진행한 로힝야(Rohingya)족 인종청소로 인해 미국 등 서방의 지원이 거의 끊기게 되었다. 로힝야(Rohingya)족에 대한 미얀마 국민들의 반감이 커서 군부와 민주세력 모두 로힝야(Rohingya)족 인종 청소를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미얀마 군부는 로힝야(Rohingya)족 인종 청소가 불가피한 이상 미국 등 서방국가의 지원을 받기 힘든 상황으로 판단하게 된다. 이 때 중국은 이 기회를 틈타 미얀마 군부에 접근한다.
2021년 초,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미얀마를 다녀간 후 1월 17일 중국 시진핑 총서기가 미얀마를 방문한다. 이때 시진핑은 미얀마의 로힝야(Rohingya)족 인종 청소를 미얀마의 특수성으로 이해한다고 미얀마 군부를 손을 들어주었다. 이렇게 중국으로부터 로힝야(Rohingya)족 인종 탄압에 대한 양해를 받은 미얀마 군부는 미국 대신 중국을 파트너로 결정하게 된다.
2021년 2월 1일 미얀마 군부는 미국 등 서방국가가 원하는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탈을 벗어버리고 군사 쿠데타를 통해 군부독재로 다시 복귀하였다.. 중국은 인도양 진출을 위한 미얀마라는 좋은 육지 통로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 2021년 3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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