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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영화話

일본, 영상, 미국-공감의 공동체와 제국적 국민주의

by 하승범 2008. 9. 25.
일본, 영상, 미국-공감의 공동체와 제국적 국민주의
   ;  사카이 나오키 지음·| 그린비·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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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즘, 민족, 인종, 국가, 문화를 천착해온 사카이 나오키 미국 코넬대 아시아학과 교수는 저서 <일본, 영상, 미국>(그린비, 2007년)에서 일본 자위대(自衛隊)는 타위대(他衛隊)라 불러야 마땅하다고 했다. 스스로를 지키는 군대가 아니라 남을 지켜주는 군대라면, 그 남은 누군가? 미국이다. 사카이 교수에 따르면 일본 자위대는 실은 미국이라는 제국(슈퍼국가)의 식민지군대에 지나지 않는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일본 점령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의 명령으로 창설된 경찰예비대는 한국 파병 때문에 병력을 나눠야 했던 일본 주둔 미군의 부족인력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경찰-군대’였다.   그 임무는 주일 미군과 그 하부구조를 잠재적인 반란이나 방해공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미군기지나 미군 병참시설을 습격하는 일본인 또는 일본 내의 반미·반체제 세력을 잠재적인 적으로 상정하고 있었다.

1954년에 자위대로 이름을 바꾼 이 군대는 1990년대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등 유사법제 입법 과정을 거쳐 2000년대 고이즈미, 아베 정권 때 ‘보통국가·보통군대화’라는 수사와 함께 정식군대, 말하자면 주권국가 국민군으로의 변신작업을 수행했다. 자위대법이 개정되고 방위청은 방위성으로 승격됐다. 사카이 교수는 그러나 자위대의 이런 변신을 “일본 식민지화의 화룡점정”으로 간주한다. 자위대의 승격을 주권국가 일본의 국민군으로 독립하는 것으로 보는 게 아니라 식민체제의 완성으로 보는 것이다.

워싱턴주 소재 미 제1군 사령부를 일본 자마기지로 이전하는 등의 미-일 군사통합 추진이나, 미국의 종합지령하에 자위대가 한반도와 다른 아시아지역에까지 진군할 수 있는 토대를 닦은 일본 유사법제, 그리고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확보를 떠올리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얘기다.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는 일본 패전과 함께 시작됐고, 군사적 지배와 함께 일본의 국민교육, 그리고 국민주의(내셔널리즘)도 시작됐다. 패전 뒤의 일본 국민주의는 미국 지배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미국 헤게모니를 수용하고 그에 영합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이는 일본 제국주의가 중국침략 과정에서 겪은 실패를 교훈삼은 미국의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중국침략 기간에 일본은 자국병사들을 전면에 내세워 원주민에게 직접 군사적 폭력을 휘두르는 저열한 방법으로 실패를 자초했다. 당시 일제 지배에 영합하는 중국 국민-민족주의를 양성해 친일 괴뢰정권을 만들어야 효과적인 지배가 가능하다고 주장한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중국 국민-민족주의와 일본의 헤게모니가 이율배반이 아니라 전자가 후자의 구성요소가 되는 비전을 제시했으나 실행되지 못했다.

사카이 교수가 보기에 패전 직후의 일본은 미 점령군이 그런 비전을 현실화하는 데 이상적인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다. 우선 ‘국체’ 존속을 위해 점령군에게 협력하려 했던 괴뢰, 곧 히로히토 천황과 일본 국내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미국에 아첨했던 보수층이 있었다. 미국은 이들의 전쟁 및 식민지지배 책임에 면죄부를 줌으로써 미국 헤게모니 영합적 국민-민족주의 조성의 토대를 제공했고 원주민에 대한 군사폭력을 대행하는 자위대라는 쿠션장치를 만들어 효율성을 배가했다. 이로써 일본 국민-민족주의는 슈퍼국가 미국의 제국적 국민주의 헤게모니와 공범관계가 됐다.

일본에서만 그랬을까? 미국이 사실상의 식민지배체제를 구축한 모든 지역에서 그랬고 한국은 그 대표적인 국가였다. 사카이 교수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이 광주의 비극을 통해 극적으로 묘사한, 내전 논리에 찢긴 한국역사를 미국 헤게모니(슈퍼국가성)와의 공범관계를 통해 육성된 전세계 신식민지적 국민주의가 마주칠 수밖에 없는 보편적 숙명의 본보기 사례로 들었다. 주인공 김영호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동포를 지켜야 할 국민군의 군인임에도 내전에 동원돼 내부의 비무장 어린 여학생(동포)을 죽였고 끝내 자신의 생도 자살로 마감했다. 그는 결국 누구를 위해 총을 들었던가?

사카이 교수는 민족·언어의 동일성에 집착하면서 한반도와 중국 등 과거 자신들이 지배했던 지역에 대한 우월감을 온존시킨 일본 국민주의의 기만적인 전쟁책임 부인과 감상적 자기연민(공감의 공동체)을 <24개의 눈동자>, <버마의 하프(수금)> 등의 영화와 다큐멘터리 <가자 가자, 신군> 등을 통해 파헤친다. 마찬가지로 베트남전쟁 패전 뒤의 낭패와 죄책감을 얼버무리면서 흔들리는 식민체제를 다시 다잡기 위해 일본 우파 국민주의와 마찬가지로 과거로의 회귀에 골몰한 미국 보수우파의 제국적 국민주의 이데올로기 싸움을 <디어 헌터> <람보> <킬링필드> <플래툰> 등의 영화를 통해 해부한다.  출처 ;  한겨레 2008-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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