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일본이 미국과의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하며 항복한 사실은 알고 있지만, 사실 일본이 가장 오랜 시간, 가장 많은 병력을 투입해 싸운 전쟁은 따로 있었다. 바로 중국 대륙에서 벌어진 "중일전쟁"(中日戰爭,| Second Sino-Japanese War, 1937년 7월 7일~1945년 9월 2일)이다.
전쟁의 시작: 만주사변에서 전면전으로
1931년, 일본은 만주사변(9.18사변, 満州事変, Manchurian Incident, 1931년 9월 18일~1932년 2월 28일)을 일으켜 중국의 동북지역을 점령하고 "괴뢰국 ‘만주국"을 세우면서 침략의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1937년 7월, 베이징 근처의 루거우차오(노구교) 사건(盧溝橋事件, Marco Polo Bridge Incident, 1937년 7월 7일~7월 9일)을 계기로 중국과의 전면전에 돌입하게 된다. 8년간 지속된 이 전쟁으로 일본군 약 150만 명, 중국인은 무려 2,000만 명 이상이 희생되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중일 전쟁의 주요 전개 상황
초기 국지전과 상하이 전투 (1937년)
일본군은 상하이를 공격하며 대규모 전투를 벌였다(상하이 전투, 淞沪会战, 第二次上海事変, 1937년 8월 13일~11월 26일) 중국군은 격렬히 저항했으나, 일본군의 화력과 제공권 차이로 인해 패배했다. 이후 일본군은 수도 난징으로 진격해 난징대학살(南京大屠杀, Nanjing Massacre)을 자행하며 수십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상하이전투와 난징대학살 배경의 추천영화:
# 800 (八佰 , The Eight Hundred) 2020년 중국
# 진링의 13소녀 (金陵十三钗, The Flowers of War) 2011년 중국, 홍콩
# 황시의 아이들 (The Children Of Huang Shi) 2008년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독일
# 난징! 난징! (南京!南京!: City Of Life And Death) 2009년 중국
장기화와 국제적 개입 (1938~1941년)
일본은 중국 주요 도시와 철도 요충지를 점령했지만, 중국군과 민병대의 끈질긴 저항으로 전쟁은 장기화되었다. 미국과 소련 등 외부 세력의 지원으로 중국은 군사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중일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추천영화 :
# 함정 (诱狼, Entrapment) 2015년 중국
# 백단대전 (百团大战, The Hundred Regiments Offensive) 2015년 중국
태평양 전쟁과 중일전쟁의 확대 (1941~1945년)
일본이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면서 중일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의 일부로 확장되었다. 연합군의 지원과 일본군의 자원 부족으로 중국은 점차 반격에 나섰다.
중일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추천영화 :
# 헝양 1944 (Hengyang 1944) 2024년 중국
# 일구사이 (一九四二, Back to 1942) 2012년 중국
종결 (1945년)
소련의 만주 공격과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이후, 일본은 항복을 선언하며 중일전쟁도 종결되었다.
중일전쟁 종전 직전을 배경을 하는 추천영화 :
# 하얼빈 대전투 : 일본군 최후의 날 (The Medal, Орден, Order) 2016년 러시아
# 퍼플 선셋 (紫日: Purple Sunset) 2001년 중국
이토록 전쟁이 길어진 이유는?
그렇다면 무엇이 이 전쟁을 이렇게 길고도 잔혹하게 만든 걸까요?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 지구전으로 맞선 중국
중국은 군사력 면에서 일본에 비해 열세였기 때문에, 일본의 속전속결 전략을 무너뜨리기 위해 광대한 국토와 인구 자원을 활용하는 장기전·소모전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이는 전쟁을 길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 일본군의 잔혹한 점령 방식
일본은 점령한 지역에서 식량과 자원을 약탈하고, 심지어 난징대학살과 같은 민간인 학살과 성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점령 방식은 전쟁의 양상을 더욱 잔인하게 만들었다.
▷ 민중이 함께한 총력전
이 전쟁은 단순히 군인들끼리 싸운 전쟁이 아니었다. 중국 민중은 연극과 문예 활동을 통한 문화 항쟁, 지역 단위의 반일운동과 봉기 등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또한 국민당군, 공산당군, 군벌 외에도 한국의 독립군과 광복군이 함께 싸우며, 국제적인 연대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연합국의 소극적 전략
미국과 영국은 중국 전선을 전략적으로 후순위로 두었다. 태평양전쟁이 본격화된 이후에야 중국을 지원하기 시작했지만, 버마 루트가 일본군에 의해 차단되면서 지원은 원활하지 못했다.
미국은 B-29 기지를 설치하고, 군사고문단과 OSS(전략사무국)를 파견하는 등 간접적인 지원만 했을 뿐, 미·영 연합군이 중국 본토에 직접 투입되지는 않았다.
전쟁의 끝에서 새로운 냉전의 시작으로
1944년, 일본이 이치고 작전(대륙타통작전, 大陸打通作戰, Continent Cross-Through Operation Operation Ichi-go, 1944년 4월 19일~12월 31일)을 통해 중국 내륙까지 진출하려 하자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더 악화되었다.
미국은 국민당군의 전투력 부족과 장제스 정부의 무능과 부패에 크게 실망하였다. 반면, 마오쩌둥의 공산당군은 전쟁 동안 민심을 얻고 전력을 축적하며 차세대 주자로 부상하고 있었다.
결국 미국은 중국군만으로는 일본을 꺾을 수 없다고 판단, 소련의 만주 진입을 요청하게 되었다 (소일전쟁, 蘇聯-日本 戦争, Soviet-Japanese War, 1945년 8월 7일~9월 2일) 중국은 곧 소련과 중소우호조약을 체결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국공내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처럼 중일전쟁은 단순히 한·중·일 삼국 간의 전쟁이 아니었다. 전후 동아시아 냉전의 출발점이 되었고, 이후 수십 년간 이 지역의 국제 질서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중일전쟁은 종종 태평양전쟁이나 유럽전선에 가려 잘 조명되지 않지만, 가장 길고 가장 잔혹했던 전쟁이었다. 올해('25) 종전 8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아시아 전장의 진실을 되새겨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 2025-03-31 스티븐 전쟁영화보고評
'전쟁영화 감상究 > 전쟁역사 그리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도-파키스탄 간의 분쟁이 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1) | 2025.05.03 |
---|---|
중동 분쟁사, 이라크 전쟁를 배경으로 하는 전쟁영화! (0) | 2025.04.26 |
트럼프 '미국의 부활' 선언! 의회 연설 주요 내용 한눈에 정리 (0) | 2025.03.05 |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이 갑자기 러시아 편 드는 이유, 희토류가 뭐길래! (1) | 2025.02.27 |
극우화되는 국민의힘, 1934년 프랑스 의회 난입 사건과 같은 정치 흐름을 경계한다! (0) | 2025.01.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