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인간이 여러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할 때 떠올리는 아이디어이다. 구원을 요청하기 위해 서유럽을 방문한 비잔틴제국 황제의 특사를 접견한 후, 교황 우르바누스2세 역시 그랬는지 모른다." (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문학동네, 2011)
이에 1094년 비잔틴제국의 콤네누스 왕조의 황제 알렉시우스1세는 교황 우르바누스2세에게 투르크족에 대항할 지원을 요청하게 된다. 교황은 이를 통해 서유럽 황제와 군주에 대한 교황권의 확보한 우위를 선포하고, 비잔틴 교회를 로마 교회에 통합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했다.
1095년 11월 프랑스 클레르몽에서 개최된 공의회(Council of Clermont)에서 교황 우르바누스2세(Urbanus PP. II, Papa Urbano II)가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Deus lo vult)"며 이슬람교도에 의해 점령된 예루살렘 성지를 회복하자는 제창에서 시작되었다.
# 민중 십자군 (1096년)
십자군을 독려하는 유럽 각지의 설교사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무일푼 기사와 모험적인 농민이 모여든다. 이들은 '은자 피에르'을 중심으로 순수한 종교적 열정과 신앙만을 가지고 아무 준비도 계획도 없이 성지를 향해 출발한다. 이들 12,000여명의 민중 십자군(또는 농민 십자군)은 비잔틴제국 콘스탄티노플에 거쳐 소아시아로 들어가 투르크군에게 괴멸되어 안개처럼 흩어져 사라진다.
1096년 가을, 프랑스인과 플랑드르인을 중심으로 제후와 기사로 이루어진 4개 군단 약 30,000여명의 십자군은 비잔틴제국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소아시아로 들어가 니케아를 함락하고 안티오키오를 점령한 후 예루살렘으로 진격한다.
1099년 7월 15일 마침내 고드프루아 드 부용이 이끄는 십자군은 피비린내 나는 학살과 더불어 이집트 파티마 왕조가 지배하던 '예루살렘'을 점령한다. 성지 탈환 이후 보두앵 1세에 의해 세워진 예루살렘 왕령을 중심으로 안티오키오 공작령, 에데사 백작령, 트리폴리 백작령의 연방국가 형태로 십자군 국가가 성립한다.
# 제2차 십자군 원정 (1147년~1148년) ; La deuxième croisade
1144년 12월 24일, 이슬람 모술 태수 장기(Imad ed-Din Zengi)에 의해 조슬랭 2세가 통치하던 에데사 백작령 '에데사'가 함락된다.
신성로마제국 프리드리히(Friedrich) 2 황제, 프랑스 필립(Philipp) 2세, 영국 리차드(Richard) 1세 3 등이 참가한 십자군의 최대 규모의 원정이었다.
하틴전투(Battle of Ḥaṭṭῑn, 1187년 7월 4일)에서 십자군측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 살라딘의 군대는 십자군측의 주요도시 아코, 시돈, 베이루트, 야파 등을 점령한다. 이후 1187년 10월 9일 마침내 예루살렘이 이슬람교도 수중에 넘어간다. 이에 가장 먼저 신성로마제국 '붉은 수염' 황제 프리드리히 1세는 기병 3천명, 보병 8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1189년 5월 11일 예루살렘으로 출정을 한다. 한편 영국의 사자심와 리처드 1세와 프랑스 필리프왕은 1190년 7월 4일 프랑스 동부 베즐레에서 출정한다. 신성로마제국국은 육로를 따라, 영국과 프랑스군은 지중해를 건너 중근동으로 향한다.
한편 티루스에서 살라딘을 물리친 중근동의 그리스도교군은 1189년 8월 항구도시 아코탈환전에 돌입한다. 이 전투는 1191년 6월 영국왕 리차드1세가 도착하고 프랑스 및 독일군들이 합류함으로써 종지부를 찍는다. 이후 십자군은 영국왕 리차드1세의 지휘하에 지중해를 따라 남하하며 하이파, 아르수프, 야파 등을 점령하며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그러나 1192년 예루살렘탈환전을 목전에 두고 앞서 프랑스로 돌아간 프랑스 필리프왕과 영국 리차드1세의 동생 존왕의 반란으로 영국왕 리차드1세가 영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십자군은 살라딘의 이슬람군과 강화조약을 체결하고 철수한다.
# 살라딘 (Al Nasser Salah Ad-Din) 4 1963년 이집트 ; 제3차 십자군 원정.
# 킹덤 오브 헤븐 (Kingdom Of Heaven) 2005년 미국, 스페인, 영국 : 제3차 십자군 원정 직전.
# 로빈 후드 (Robin Hood) 2010년 미국, 영국 ; 제3차 십자군 원정 직후.
# 아이언 크래드 (Ironclad) 2011년 미국, 영국 ; 제3차 십자군 원정.
# 템플 기사단 (Arn, The Knight Templar) 2007년 독일,스웨덴 외 ; 제3차 십자군 원정 직전.
- 신실했던 프랑스 왕비 '엘레오노르'는 루이7세과 십자군 원정실패로 사이가 나빠져 1149년 로마교황으로부터 '결혼무효'를 인정받는다. 이후 1152년 엘레오노르는 노르망디공작 앙리와 결혼하고 그가 2년 후 영국왕 헨리2세에 등극한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 중 하나가 제3차 십자군 원정을 이끄는 영국의 사자와 리처드1세이다. [본문으로]
- 제2차 십자군 원정을 이끈 독일 콘라트3세의 조카로 제2차 십자군 원정에 참전하였다. 흔히 바르바로사 즉 붉은 수염의 황제로 알려져있다. 예루살렘 탈환을 위해 1189년 중동으로 출발하여 1190년 6월 10일 소아시아 지역을 지나는 던 중 괴크스(Goksu)강에서 심장마비에 의한 익사를 한다. [본문으로]
- 제2차 십자군 원정에서 프랑스왕 루이7세의 왕비로 여성전사들과 함께 직접 원정에 나섰던 '엘레오노르'와 영국왕 헨리2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이다. [본문으로]
- 나세르 살라흐 앗 딘 (1137~1193) ; 이라크 티크리트에서 쿠르드 족의 귀족 나즘 앗 딘의 장남으로 태어나 아이유브 왕조를 창시하였다. 본명은 '살라흐 앗 딘 유스프 이븐 아이유브'이다. 뛰어난 지도력과 역량으로 북아프리카에서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아나톨리아(터키)에 이르는 이집트 제국의 아이유브 왕조를 형성하고 이슬람 세계를 통일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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